다음은 스카이프 블로그 이벤트 관련해서 그전에 생각났던 것을 정리해서 쓴글입니다. 일단 이벤트 공모글입니다. ^^
1. 이 스카이프 블로그에 대해 의견
먼저 다른 제품블로그에 비해 스카이프에 대한 다양한 사용 예와 제품에 대한 다양한 컨테츠가 부족한 것 같음. 좀더 다양한 계층에서 스카이프를 사용후 그에 대한 후기 및 의견들이 블로그에 올라왔으면 합니다. 그 내용들을 보고 사용하는데 참고 했으면 해요.
2. 스카이프폰에 대해 의견
벨킨 등의 인터넷 폰을 보면 영어로 되어있는게 보이는데요. 이런것들은 한글화 할수 없는지? 다른 인터넷폰(lg, kt)등의 인터넷폰들은 한글이 되어있던데, 이런것은 불가능 한건지? 만일 벨킨 인터넷폰 등을 샀을때 한글화가 안되어 있어서 다양한 기능을 못 쓰는건지 걱정도 됩니다.
3. 다른 메신저, 블로그 서비스 플러그인 혹은 위젯등에 생각은 없는지?
스카이프의 경우 해외에서는 유명한 서비스인데, 국내에서는 전혀 유명세를 타지 못하고 있는것 같음
이에 대한 방안으로 다른 메신저(네이트온, msn, gtalk등)에 플러그인 등으로 참여하거는 건 어떤지? 아니면 블로그 서비스에 친구들에 상태에 대한 위젯등을 단다거나.. 혹은 블로그에서 직접 블로그 주인에게 전화를 할수 있는 플러그인 서비스, 블로그에서 댓글이 스카이프 메신저로 직접 연결되는 플러그인 등등 들을 생각해볼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
스카이프는 전세계 4억4천만명이 이용하는 세계 최대의 인터넷전화 서비스입니다. 스카이프 친구 사이에는 무제한 무료통화를 할 수도 있고 화상통화도 즐길 수가 있습니다. 물론 채팅 서비스도 공짜로 이용할 수 있구요. 여러분은 스카이프를 어떻게 이용하고 계시나요? 많은 분들이 스카이프 서비스를 PC에서만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데, 스카이프는 USB폰, PC없이도 사용할 수 있는 데스크톱폰, 컨퍼런스용으로 쓸 수 있는 컨퍼런스폰 등 스카이프가 인증한..
Tracked from VoIP on Web2.0 2009/06/2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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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터넷전화 가입자가 400만명이 넘는 등 이제 국내에서도 인터넷전화가 주류 통신 서비스에 진입을 했다. 그 동안 제 블로그를 통해 국내보다는 해외 인터넷전화 서비스를 많이 소개해 왔는데..앞으로는 국내 인터넷전화 서비스에 대해 많이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무척 기쁜 일이다. 하지만 국내 인터넷전화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무척 많은 듯 하다. 해외에서는 일반화되고 있는 모바일 인터넷전화(Mobile VoIP)의 경우..
세상이 변할수 있다는 "희망"은 꿈도 꾸지 못한다. 세상을 바꿀수 있는 주동력인 20,30대의 보수화, 무관심, 아니 통틀어서 "캐막장"화는 어느정도 민주화되었다던, 김대중, 노무현시대부터 눈에 뻔히 보였던거 같다. 자신에게 무리한 경쟁임에도 뻔히 알면서, 변화하려고 하지 않고, 일신의 안위에만 뛰어드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그들이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나같은 경우 그들에 비하면 아웃사이더였고, 상대적 이상주의자라고 낙인찍혀서 논외대상이 되기 일쑤였다.(나 같은 사람을 이상주의자 라니...)
근래에 "천원돌파 그렌라간"(제작 가이낙스)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봤다. 복고풍 열혈로봇물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그보다 더 재미있는 점이 이 애니메이션에 보인다. 이 애니에선 "나선", "드릴"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나선이라 이거 "변증법"을 얘기하는 거다. 끝내 무한 발전을 믿는 세력(나선족)과 무한 발전뒤에는 종말 뿐이라 변화발전을 막아서는 세력(반나선족)의 싸움이 이 애니메이션의 주축이다.
고객님의 계정을 확인한 결과 계정에 장기간(30일 이상) 로그인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계정이 비활성화되면 전자 메일 메시지와 폴더가 모두 삭제됩니다. 그러나 계정 이름은 보존됩니다. 계정이 추가 90일 동안 비활성 상태로 유지되면 계정 이름도 영구적으로 삭제됩니다.
현재로서는 계정이 비활성화되면 메시지가 서버에서 영구적으로 삭제되므로 이러한 메시지를 복구해 드릴 수 없습니다. 또한 기술 팀에 문의한 결과 이러한 삭제된 메시지는 백업되지 않음을 확인했습니다. 이는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려 서비스의 효율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불가피한 조치입니다. 서버에서 삭제된 메시지를 복구할 방법이 없으며, 이러한 불편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고객님의 소중한 메일을 복구해 줄 수 없는 것에 대해 저희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부디 고객님의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 부탁 드립니다.
현재 고객님께서는 계정을 활성화하신 후 Windows Live Hotmail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Windows Live Hotmail에서는 MSN Hotmail의 무료 전자 메일 서비스가 새롭게 개선되어 계정 비활성화 정책이 120일로 연장되었습니다.
추후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려면 고객님의 Hotmail 계정에 최소한 120일에 한 번씩 로그인해 주십시오. MSN Messenger 또는 My MSN 등의 기타 MSN 서비스에 로그인하는 경우는 전자 메일 계정에 로그인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고객님의 소중한 메일을 복구해 드릴 수 없는 것에 대해 저희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부디 고객님의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 부탁합니다.
Windows Live Hotmail 기술 지원 서비스에 문의해 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추가적인 지원이 필요하면 지원 사이트 (http://support.live.com/)을 통하여 언제든지 다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고객님께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Windows Live Hotmail 지원 팀 [김수해] 드림
아니 이것들이 장난치나...과연 어느 메일서비스가 30일 로그인 안했다고 메일박스를 다 지우나. 내가 가지고 있는 몇몇개의 메일서비스 어디도 함부로 개인 사용자의 메일을 지우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hotmail 서비스를 이용할때 로그인 30일 안했다고 메일들을 지운다는 얘기를 어디서도 고지 받은 적없다.
그렇다면 30일동안 여행을 가서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한 사용자(특정 이유로 접근하지 못한 사람들)는 그 계정을 그냥 날려먹어야 하는가? 만일 지워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지운 파일들에 대해 백업을 할수 있는 시스템이라도 만들어 놓던가? 내가 가지고 있던 메일의 용량은(스팸 제외) 겨우 2메가였다. 大microsoft사가 쪼잔하게 2메가 아까와서 지웠다니 말이 안나온다.
된장녀스런 여성의 기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웃기게도 나와 같이 일한 어떤 여성은 스타벅스 얘기를 입에 달고 다녔고 일은 지지리도 못했다. 게다가 남들이 싫어할만한 일만 해댔으니..
근데 난 스타벅스(혹은 커피빈, 파스쿠치)를 가끔씩 찾는다. 커피가 땡길때, 서울 안에서 그런데로 내가 기억하는 커피맛을 주는 커피집에 많지 않다. 지역마다 스타벅스보다 더 좋은 커피집이 있는 걸 알지만, 그것을 다 알만한 정보력도 없기때문에 대충 커피 땡길때 그런것들을 찾는다. 브랜드의 힘이지 뭐..
스타벅스를 찾는 이들이 허영심이 많다길래, 물론 남자지만, 나는 그런 허영심은 없었나? 돌아본다.
"된장녀"란 불명확한 개념의 창궐에 못마땅하긴 하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저그런가 부다 했다. 또 들리기로는 누구는 그들을 꼴패미라 욕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에서야 깨닺게 된 사실은, "된장녀"란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가려는 혹은 그런 남자만을 밝히는 여자를 말하는 거였다.
혹시나 내가 제대로 모르는가 해서, 지식인 서비스를 찾아보니, '얼굴도 못생기고 못난 놈이 돈 많고 잘생긴 남자 밝히는 년' 이란다.
아마 스타벅스에서 주리줄창 개기고 있는 몇몇 여성을 부르는 개념은 발전하고 발전해서, 남성성에 대적하는 이들로, 또 다시 '그 여성들이 바라는 남성상은 돈많고, 잘생긴 넘으로 전이'되었다. 그러더니 노현정이 현대재벌가의 아들과 결혼하다고 하니, 다들 된장녀의 새로운 표적을 노현정으로 고정시켰다.
문제는 공격하는 남자들의 이 "된장녀"의 개념의 중심과 서로간의 연관이 없다는 거다. 언제는 주제도 모르는 정신머리 없는 년이었다가, 언제는 공격적 패미니스트였고, 언제는 돈만 쫒는 여자들로 바뀌었다. 3가지는 어떠한 연관이 없는데도 말이다. (보라, 주제도 모르는 정신머리없는 여자들이 공격적 패미니스트이다라는 필연적 연관도 없다. 돈만 쫒는 여자들이 허영심이 많은 여성들인 절차적 전이 공식도 없다.)
그런데로 연관성이라면 "속물"이라는 개념이 아닐까? 근데 말이다.
이런 속물적 근성은 이 분들만 있는게 아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자 하는 욕망과 그로 인한 상대적으로 좀더 높은 계급으로의 이동을 원하는 이들은 여자들의 특유의 성질이 아니다. 우리들 부모님에게도 필수도 존재하는 습관이고, 그들의 아들, 딸인 나도 아무리 세상을 다줄만큼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결혼이라던가, 함께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솔직히 상대방을 재력적 지위를 나도 무시할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것은 그냥 우리들 대부분에게 그런 속물적 근성이 있는 것이 있다라는 사실로 끝내는 게 어떨까 한다. 다만 그것들의 차이가 좀 있을 뿐이고...게다가 노현정까지 연루된 된장녀의 구분은 거의 도덕적 관념에 가깝다.
문제는 이런 명확하지 않은 개념들이 정리도 안되고, 내용이 계속 변이를 하고, 남성과 여성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따위 논쟁꺼리도 안되는 것가지고 서로 싸워드는지? 실체도 없는 것가지고 이젠 고만 싸우자. 남성과 여성이 서로 사랑하기도 아까운 이시간들에 되도 안는 말싸움이라니...
거기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어떤 이의 행동이 그외의 이들에게 해를 주지 않는 이상 우리가 그들에게 도덕적 관념을 들이댈 필요는 없다.
시바 노현정이 돈많은 새끼랑 결혼하던, 천하의 꽃미남새끼랑 결혼하던, 우리가 관여할만한 일이 아닌거다. 돈있는 넘들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은 수많은 남자들에게 자격지심을 주는 것 같다.
아무튼 이번 노현정 결혼사건으로 인해, 무리하게 공격대상을 찾았던 이들, 누구누구를 된장녀라 부르짖던 이들이 노현정을 타켓으로 하면서 지들꾀에 지들이 넘어가게 생겼다.
그런데로 어떤 허영과 교만한 여성을 지칭하였던 개념은 무차별한 확장을 되풀이 하면서 사라져간다.
먼저 불여우에서는 잘나오는데, 익스플로어에서는 문단이 무시되고 나오는 군요. 흠..-_- => 수정!!
이글은 다음에 관한 트랙백 글입니다.
블로그 어워드 수상결과에 대한 유감 : http://leegy.egloos.com/1201404
이규영님께..
저는 영진공 기술쪽 관리자이자, 테터툴즈를 이용해 영진공을 만든 사람입니다.
영진공이 만들어진 부분과 블로그에 대한 얘기를 하면 이런 논쟁이 정리되지 않을까 해서 얘기좀 드리겠습니다.
영진공은 블로그인가?
저희 우원은 약 20명정도로 자신의 블로그를 가지신 분도 있지만, (기존)블로그 형태가 아닌 자신의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으신 분도 있는 구성입니다. 컴퓨터에 익숙하지 못한 분들도 있기에 홈페이지는 물론 블로그도 안가지신 분이 계십니다.
허나 딴지일보의 쇄락이후에도 저희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컨텐츠들이 충만한 상태인데다가, 자신의 홈페이지나, 블로그로 가지시지 못한 분들도 있기 때문에, 일종의 그분들의 알찬글들을 보여줄 심산으로 포스팅 콜랙팅 사이트를 지향했던게 사실입니다. (이러니 단체블로그인 성격도 있지요. )
그러면서, 딴지일보의 웹진형태를 가졌으면 하는 우원(저희는 구성원을 이렇게 부릅니다.)들의 바람에 테터툴즈에 제가 플러그인형식으로 추가했습니다. 테터툴즈 소스의 간결함덕분이었지만 쉽게 웹진의 메인형태를 가지게 되었습니다요(이러니 웹진 성격도 있지요.). 영진공 초기형태에서는 웹진 구성도 없는 시간순으로 배열된 단체 블로그 였습니다.(0호 창간이 04년 11월이지만, 첫 포스트는 9월부터인것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사실 여러 블로거들께서 간단히 소스 수정으로 랜덤한 블로그글들을 메인에 개시한다거나, 특정 포스트를 전면에 내거는 행태도 목격되기에, 웹진메인을 가진다고 해서 블로그가 아니라라는 규정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제가 소스를 고쳐 일부글은 시간순서대로 흐르게 하고, 일부글은 고정을 해버리면 어떻겠습니까? 이건 블로그입니까? 아닙니까?)
암튼 종국에는 자유로운 영화 논쟁의 장과, 트랙백, rss를 이용한 영화관련 신디케이트 구성이 저희가 원하는 지점입니다.
일종의 변종으로 보시면 되는데, 영진공은 웹진이자, 단체 블로그이고, 포스트 콜랙팅 사이트 입니다.
형식에서는 물론 충실히 블로그의 형식을 따르고 있고(블로그 형태의 글을 보고 싶으시면, http://0jin0.com/blog/index.php ) 1,2주에 한번 기사 업데를 하는데, 점차 상황이 나아질 경우 업데 간격을 줄일 생각입니다. 그러면 글들을 모으는 일종의 웹진성격도 희미해질 수도 있다는 가정도 합니다.
참 저희가 포스트를 기사라 칭하는 것을 가지고, 블로그가 아니지 않느냐 하는데, '포스트'란 단어는 블로그에서의 글의 단위를 이야기 하기도 하지만, 포스트는 "①이메일 통신망으로 상대편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뉴스그룹에 기사를 투고하는 것. ②한 단위의 기본 정보를 레코드에 삽입하는 것. ③컴퓨터의 게시판이나 온라인 포럼의 메시지 난에 메시지를 첨가하는 것."란 뜻도 존재합니다. "유즈넷"에서 처럼 초창기 게시판형식이었을때부터 포스트는 사용되었던 말이며, 보통 온라인 상의 기사들을 칭하는 말로 알고 있습니다.
어짜피 블로그도 1인 미디어로 자신의 기사를 자신의 전자공간에 개시하는 것이니, '포스트'란 단어가 '기사'란 말과 바꿔어 사용해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블로그란 것이 정확하게 규정되지 않았습니다만, 1인 미디어란 말도 사실은 개인이 홀로 운영한다는 의미보단, '하나의 라이센스를 가지는 전자공간'이라고 보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비번을 공유하며, 다수운영자가 블로그를 운영을 할때 다수가 하는 건지 아닌지는 자신이 밝히지 않는 이상 단체인지 개인인지 알수 없는 것처럼(만일 듀나처럼 2~3인의 필자가 블로그를 운영한다고 했을때, 그들 자신이 밝히지 않는 이상 블로그냐 아니냐 규정할수 있느냐 입니다.) 블로그를 단순 1인이 운영하는 미디어라 보는 것은 단순한 뜻풀이 일것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블로그사이트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예들을 잘못 보면 단순 상황에 의미 맞추기 위해 설명드린 것 같이 보일수도 있는데, 그것보단 저희가 영진공을 구성했던 약 3년간의 고민속에서 나온 지점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깐 블로그를 보는 지향자체가 서로 다를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블로그란 정의는 고정적인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의미가 계속 확장하고, 변화하는 것이 블로그이지 않을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끝으로 저희 영진공은 ..
블로거들의 잔치 블로그 어워드에 웹진이자, 단체 블로그이자, 포스트 콜래팅 사이트인 저희가 참여했다는 것에 무한히 기쁘다는 사실입니다. 상을 탔다는 것보단 말이죠. 또 그로 해서 많은 분들이 저희 사이트에 와주신 것에 너무 감사드립니다.
블로그 어워드가 경쟁을 위한 상품타기 행사가 아닌, 규정되지 않고, 변화하는 다양한 블로거들이 존재하는 축제라는 의미에 동감하는 바입니다. (참 저희가 받은 상품은 이벤트로 다시 블로거, 독자들에게 돌릴 생각입니다.)
특히 이번 올블로그의 행사의 의미는 경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누군가와의 블로그와 경쟁해서 어워드에서 상을 타기 위해 블로깅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요? ) 블로그의 문화를 체험하고, 한해를 정리하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규영님의 문제제기에 초기에 고민을 했지만, 블로그 어워드가 '규정을 만들어 서로를 소외하거나, 제외시키는 것이 아닌, 수많은 블로그들이 다양성을 기반해 하나가 되는 축제의 장'임을 알기에 계속 후보자격을 가져가자고 했습니다.
오, 성실하고 친절하고 설득력 있는, 좋은 답글이로군요. ^^ 특히 포스팅-기사에 관한 말씀에 공감합니다. 까짓거 그런 명칭 차이는 사실 별 거 아니죠. -,.-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이규영님께서는 "정작 <영진공>의 필자 본인들은 자신들의 사이트는 '단체 블로그'가 아니라고 해명을 했습니다."라고 쓰셨던데, 그때 그렇게 말씀하셨던 까닭은 무엇이었습니까? "영진공은 웹진이자, 단체 블로그이고, 포스트 콜랙팅 사이트 입니다."와 완전히 모순되는 말이라 그 부분 만큼은 조금만 더 자세한 설명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원 한분이 김도영님의 글에 답변을 한다는 것을 잘못 이야기 하신것 같습니다. 블로그밈처럼 모블로그가 존재하는 블로그툴이 나오는 것과 같이 포스트 코랙팅 사이트의 존재와 웹진과의 관계는 그렇게 모순적이지 않은것 같습니다. 나주 공동체 라디오의 홈페이지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라디오 웹진이자 블로그 입니다. http://www.najufm.com
모 블로그도 블로그이긴 한거죠.
신문기사도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시간의 순서대로 밀리는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블로그의 경우도 주인장의 의사에 따라 하나의 포스팅이 계쏙 상단에 위치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와같이 블로그는 물론 계속 바뀌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그 근본이 되는것은 말씀하신 '1인 미디어'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1인 미디어'의 '1인이 하나의 라이센스' 라는데에 동의 할 수 없습니다. 의견의 차이는 여기에서 나오는듯 합니다.
1인 미디어란 말을 개인이 운영하는 의미보단, '하나의 라이센스를 가지는 전자공간'이였다는 정의는 처음듣습니다. 그건 1인 미디어가 아니라. '하나의 미디어'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은 '웹진'이라 부릅니다. '1인 미디어'의 '1인'이 다른의미였다는 것인데...
물론 의미는 이해 하겠습니다만, 그러나 그것은 그 '1인'을 타인들도 1인으로 이해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영진공을 '1인'으로 인식할지 '군체'로 인식할지 의문이군요. 게다가 각각 다른 '필명'으로 글을 올리는 상황에서(누가 글을 쓴건지아는 상황에서) 하나의 '영진공'이란 '1인'군체로 인식할지도 의문이 드는군요. 예를들자면
말씀하신 '기사'를 '영진공'이란 하나의 '미디어'가 쓴것으로 인식할까요? 아니면 '영진공' 이라는 '미디어'의 '~~~우원'이 쓴것으로 인식할까요?
말씀하신 1인 이라면 하나의 라이센스를 가진 '영진공'이란 닉으로 만 사람들에게 인식되야하지 않겠습니까?
왜 사람들이 가지고있는 블로그에대한 기본 개념을 엎으면서까지 블로그에 집착하시는지 의문입니다. '웹진'이잖습니까? 차라리 '다른 미디어'라 주장하십시오 (저는 웹진이라 생각합니다만.)
제가 언급한 1인미디어 이야기를 잘못 이해하셨군요. '하나의 라이센스를 가지는 전자공간'을 개인이 운영했던것이 블로그였습니다만, 1인미디어가 아닐수 도 있다라는 말은 블로그의 현재적 의미에서의 말입니다. 그에 좀 제가 보기에도 궁상스럽지만, 예를 하나 들어드린 것입니다.
웹진맞습니다. 틀리다고 한적 없습니다. 그리고 말씀드렸듯이 블로그의 변종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렇게 또 적절하지 않을지 모를 예를 들어봅시다. "연애의 목적" 배급사 혹은 홍보회사에서 홍보차원에서 네이버에 블로그를 만들어놓고, 다수의 인들이 운영했을때, 그건 블로그입니까? 홍보 웹진입니까? 강혜정이 영화홍보를 위해 그 영화에대해 혼자서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은 블로그 입니까? 아닙니까? 형식은 블로그지만, 일면 웹진이기도 한것입니다.
그것을 굳이 블로그가 아니다라고 말할 어떠한 기준도 우리에겐 없습니다.
블로그가 1인 저널리즘에 기반하다는 정의는 맞지만, 그것에 해당 안되는 블로그도 존재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들을 속속 일인 미디어인가 아닌가 가려내어 이건 블로그 저건 블로그아님 구별해 낼수 있는 '블로그의 정의'조차도 이제는 미약해진 상태입니다.
차라리 블로그의 정의를 그렇게 다양하고, 폭넓은 의미로 사용하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하핫, 서로에 대해 가장 근본적인 부분에서 의견이 갈리는군요. 의견 잘 읽었습니다. 잘 좁혀질것 같지 않네요.
아, 그리고 '웹진형 블로그가 블로그가 아니라면, 백마는 말이 아니죠. 하하.'란 intherye님의 말씀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웹진이라고 주장할수도 블로그라 주장할 수도 있지만 그렇기때문에 어느쪽도 아니라는 주장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유에다 '초컬렛'을 섞은것 정도로 생각해 '초코우유'라 부러며 우유로서의 정체성을 인정 해 줄것인지 아니면 제조과정에 '우유'가들어간 '빵'으로 인식할지가 아직 과도기 란 말입니다. 지금 이야기 되고 있는것도 이 이야기 이구요. 블로그로서의 정체성이 남아 있는가? 그리고 올해의 '우유'를 선정할때 '초코우유'와 '흰우유'부분은 구별했어야 공정한 '어워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게 사람들이 말하는 '딴지'를 거는 이유입니다.
웹진형 블로그가 양쪽 다일 수는 있어도, 어느 쪽도 아닐 수도 있나요? 다음번 행사 때, "웹진형 블로그"는 심사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하면, 웹진형 블로그는 블로그가 아니라고 결정하는 셈이 될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음, '백마'는 어떤 의미에서는, '그냥 말'이 아니기는 합니다. 아마 그런 말씀을 하고 싶으셨나 본데, 백마는 어디까지나 '백&마'인 것이지 '~(백마)'라고 해서 '(~백)&(~마)'란 얘기는 아니죠. 아, 말 꼬인다;;;
음, 이를 테면, 저는 조선일보 사이트가 덧글과 트랙백 기능을 갖춘 다음 '신문형 블로그' 겸 '기사 콜렉팅 사이트'라고 우겨도 믿어줄 겁니다. 거기에 무슨 문제가 있나요? 그래도 여전히 조선일보가 내년 블로그 행사에 개인 블로그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참가하는 데에는 반대할 수 있죠. 위에서 엽기민원님의 말씀을 인정하는 덧글을 달기는 했지만, 여전히 이번 일에 대해서는 재고의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초콜렛 함량에 따라 가공식품의 분류체계가 달라지는 건 각국의 실정법에 따를 겁니다. 이번 것도 마찬가지. 블로그 어워드의 주최측이 개선된 기준을 제시하겠죠. 올해엔 영진공이 다른 개인 블로그들과 경쟁했지만, 내년엔 별도의 분류를 만들거나 제외되기를 바랍니다.
웹진형 블로그건 블로그형 웹진이건 간에 영진공은 양쪽의 성질을 다 가지고 있다는걸 부정하지 않습니다. 영진공쪽에서는 자신이 '블로그'라고 주장하는거구요.
웹진형 블로그는 블로그다. 라고 단언하셨지 않습니까. 저는 그부분에 문제제기를 한 것입니다.
블로그형 웹진은 웹진이다. 라고 주장할수도 있다 는 겁니다.
영진공에 태클을 거는 저같은 사람들은 영진공의 형태가 '초코우유'의 형태가 아닌 '빵'의 형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랍니다.
비유가 좀 그런가요? 단순하게,
블로그 와 웹진 이라는 각기다른 술을 블랜딩한 걸로 보인다 이말입니다. 그 블랜딩한 결과물이 블로그의 성격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에 블로그어워드 에서는 빠져야 한다는 의견이구요. 그리고 '블로그'의 양보다 '웹진'의 양이 더 많아보여서 저는 '웹진'이라 부르고 싶은데, 자꾸 '블로그'라고 우기는 것 처럼 보인다 이말입니다. 차라리 블로그와 웹진을 섞은 '칵테일'이라 주장을 하라 이거구요. 그리고 자신들의 주장대로 '칵테일' 이라면 왜 '블로그'어워드에 나왔냐 이거죠.
내가 본 부천사태
작년 12월말 김홍준 전 집행위원장의 해촉 이야기가 나올 무렵 부천영화제에서는 몇 가지 핵심문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영화제의 규모가 커지고 위상이 높아질수록 그 합당하는 조직이 필요했으나, 영화제 조직위원회는 일종의 대기업 경영마인드로 긴축재정을 이어갔고, 이런문제로 영화제 사무국은 영화제 조직위원회와의 마찰이 많았다.
또한 그 중심에는 영화제 사무국 핵심장인 그 당시 사무국장(현 사무국장)의 역활과 능력이 너무나 부족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이 '부천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인 '국제 영화제' 사무국장의 역할은 얼마나 크겠냐? 생각하시겠지만 은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가 평소 하는 일이라곤 보통 사무국장이 하듯 예산과 부서 업무를 조율하고 각종 일정을 집행하는 것이 아닌, 하위 부서에서 올라온 기안지에 집행위원장 대리 싸인 행위 정도와 점심때 조직위원들, 지역유지들과의 점심과의 반주, 좀 많이 약주를 하셨다 하면 점심후의 낮잠도 즐기시다 퇴근하시는 그런 호쾌한 분(?)이셨다.
전체 워크숍이나 전체 회의 때는 영화제 일정 및 기획에 한마디도 못하면서, 시간외 근무의 스텝들의 저녁식사에 드는 돈 한 푼을 아까와 하며, 자막, 원고 배송비를 줄이라고 호통을 치곤했다. 사무국장의 일보단 시청관계자, 지역유지와의 관계를 유지했던 일종의 대외협력부장의 일을 하곤 했다.
그의 무능이 얼마나 심했으면 했으면 규모가 커지는 2004년도 영화제를 준비할 때는 조직구성안에 사무국장의 무능을 대체하기 위해 사무국장과 각 팀의 팀장간의 가교 역할을 할 '부장제'도 신설할 수밖에 없었다. 사무국장 밑에 두 명의 부장을 두어졌고 사무국장이 해야 할 업무를 대신 부장들이 해갔다.
개인적으론 부천은 다른 영화제들에 비해 그런대로 좋은 스텝 시스템을 구비했다고 생각한다.(같이 일한 스텝들은 아우성 칠테지만, 다른영화제 비교한다면이라는 단서가 있다.) 그런데 그런 중추에 잘못 박힌 돌이 나머지 뿌리까지 뽑아버릴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2004년 초의 파워게임
2004년 3월까지의 집행위원장, 사무국장임기가 다 되어서 재임용 회의를 목전에 두고 있었는데, 사무국장에 대한 불신감이 팽배한 시기여서, 2004년도 김홍준 집행위원장님도 그 부분에 대해 고려하고 있는 터였다. 쉽게 말해 사무국장을 자르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무국장이 '자신의 자리를 존속하기 위해 모 유명영화제 집행위원장에게 자신의 자리를 존속시켜 주었으면 한다는 말을 했다'라는 소문이 들어올 무렵 그는 안타깝게도 재임되었다.
점심시간의 술 한 잔의 위력은 조직 내 문제를 알고 정리하려고 했던 집행위원장의 힘보다 강했던 것이다.
그러던 와중 2004년 12월 해촉건에 대해 문제가 터지고 이사회들이 소집되었을 때, 집행위원장 해촉을 막후에서 지원했던 이가 또 이 사람이었다. 그러니깐 집행위원장 밑의 부하직원 사무국장이 해촉를 주도한 셈이 된 것이다. 일종의 하극상으로 영화 "범죄의 재구성"의 표현으론 엉덩이 종기수술하려다 되려 종기에게 뇌수술 당한 셈이다.
왜 이사람 이야기를 하냐면 내가 여기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김홍준위원장이 해촉이 되고, 그래도 자진사표를 내지 않은 스텝 4명은 해촉에 대해서는 반대를 하나, 어떻게 해서든 2005년 부천영화제를 제대로 이끌어 가기위해선 남아 있는 다는 판단 하에 재계약을 하기로 했다. 다른 스텝들은 시와 조직위원회 사람들의 행동에 신물을 느끼고 다 그만둔 터, 남기로 한 4명까지 그만둔다면 진짜 영화제 개최 여부가 불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새로운 집행위원장으로 '정홍택'씨가 왔다. 정홍택씨는 성격대로 호쾌하게 남아있는 스텝 4명을 모아서 뭐든 다 들어줄 터이니 제대로 된 영화제를 멋지게 하자라고 말했다. 그래서 스텝 4명은 영화제 정관 수정, 이번 사퇴를 야기 시켰던 조직위원회 총사퇴 와 그 실무를 맡았고, 기간 동안 무능했던 사무국장을 퇴진을 요구했고, 정홍택씨는 구두로 그렇게 이행할 것이라고 확답을 주었다.
나의 해고
그로 이틀 후 사무국장을 포한함 새 집행위원장과의 회의시간에 정홍택씨가 왜 부천은 부장제를 두고 있냐는 말에, 나는 솔직히 사무국장에 능력부재에 의해 부장제가 신설되었다고 있다고 당당히 얘기했다. 사무국장은 물론 그 엄중한 회의 자리에서 쌍욕으로 응수했고, 정홍택씨는 그에게 나가라고 했다. 남은 스텝 4명에게 영화제 정상화에 대해 다시 한 번 확답을 주었고 그 자리에서 나왔는데...
그리고 하루 만에 돌아온 건 나의 해고 이야기였다. 통지서를 받은 것도 아니다. 총무직 직원한테 "너 해고됐다"라는 말뿐이었다. 이유도 없다. 나중에 들리는 소리론 나를 해고하면, 사무국장이 자신이 사퇴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 한다. 사무국장이 논개가 된 것이다.
나머지 3명의 스텝이 그에 항의 했고, 정홍택씨는 고민해보겠다고 했고 돌아가라 했다. 그 뒤 정홍택씨는 부임한지 보름도 안 되어 자진 사퇴를 한다. 뭐 언론에는 스텝들이 집행위워장에게 압력을 가했다느니 했다는데, 실지로는 4명의 스텝중 한명이라도 부당해고 시에는 다같이 함께 하겠다는 마을 몇 번 정총택씨에게 얘기했다. 암튼 그러니깐 나는 정홍택 체제하에 최초이자 마지막 부당해고자가 되었다.
그 이후 정홍택씨는 안면을 바꿔 나머지 스텝 3명이 압력을 넣어서 그만둔다고 신문에 떠들어 댔고, 조직위원회에서는 남아있는 스텝3명을 그 이유로 다시 해고 했고, 그 바로 사무국장을 복귀시킨다.
무슨 삼국지 모략 얘기가 아니다. 실재 존재했던 나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부당해고.. 나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는 구나. 그 뒤로 나에게 뭔가 모르게 어줍지 않은 의협심이 생긴게 사실이다. 바로 내가 뭔가 하지 않으면 진다는 생각이 들어싸.
3자적 입장
혹시 문제가 '사무국장에게만 있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할 사람이 있겠다.
문제의 핵심은 이렇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이렇게 무능하고, 무지한 사람이 '국제'영화제 사무국장을 할 수 있으며, 또 그의 임기가 유지되며, 그를 비호하고 같이 점심시간에 술이라도 한잔 한 조직위원회 할아버지들과 한 통속이 되여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를 사유화를 그렇게까지 당당히 자연스레 할 수 있는가?에 있다. 바깥에 있던 관객들은 아무도 몰랐다.
어떻게 그 불합리를 유지하는 시스템은 공격받지 않고 존재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런 사실들을 알아보지 않은채(진실을 파헤쳐 진리를 알아가지 않은채), 무슨 불구경인냥 권력싸움 비슷하게 본다는 관객들이 사실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멀리서 팔짱을 끼고 레알이던, 부천이던 같은 거리로 다가가 겠다라는 '제3자적 입장'의 사람들은 과연 그 제3자적 입장이 끝내 누구의 손을 들어줬는가를 직시해야 한다.
외부관객들은 몰랐던 일들이 엄현히 존재했고, 그 안의 힘 없는 스텝들은 어떻게 해서든 그 썩은 부분을 고쳐볼라고 노력을 했다는 사실은 아마 잊혀질 것이다. 그래서 뭔가 해야한다.
함장님이 좋다길래 봤다.
함장님은 너무 좋다면 얘기하셨지만, 그래서 미안하지만...몇가지 할 얘기는 해야겠다.
유시민 서울대 강연 그렇게 나쁘진 않았다.
70%는 좋다.
진정성 문제, 조중동에 대한 언론관, 선거구제 개편등은 원래 보통 해줘야 하는 말이다. 유시민 정도라면...
근데 말이다. 그가 자본주의자로 잘 쓰는 단어이자 강연 전반에 나오는 '합리적 효용성'에 대해 하는 말은 그의 위치에선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잘 보면 그가 행한 행위에 대한 비겁하고 교묘한 변명이다.
올바른 것은 꼭 해야된다는 말하면서, 과연 그렇게나 옳지 않은 '이라크 파병'을 보스가 다 이리저리 재보고 정했으므로 바르지 않는 것이지만 해야된다라는 궤변의 진의는 무엇인가?
그것의 핵심에는 유시민도 얘기하지만, 실지로는 보스에 대한 충성심보다 그렇게나 영상 전반부에 얘기했던 '합리적 효용성'이지 않을까 한다. - '서민이던, 농민이던, 민주노동당이던 어떠어떠한 사안에 합리적 효용성이지 않는가? 열린우리당을 지지해라'라는 말은 계속 나온다.
행~ 실용주의 단어를 얘기하면서 동시에 유물론 운운하는 것은 우습기만 한데, 왜냐면 동영상 처음에 '진정성은 주관성이다'라 유시민 자기자신이 얘기한것처럼, 또 '가치'에 대한 그의 유물론적 사고를 되뇌이던 그가 돌현 '합리적 효용성'이란 탈을 쓴 실용주의를 당연한 시대인식 듯 얘기한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실용주의는 개인, 및 몇몇 그룹만에게만 작용하는 주관적 가치론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 소비자가 느끼는 재화나 용역을 소비함으로써 느끼는 만족의 크기를 이르는 말.'의 효용이란 말뜻처럼 인간의 욕망을 얼마큼(?) 충족시키는 가의 주관적 가치척도 단어가 이렇게 자신에 합리화에 마구 쓰다가, 어떤 부분에선 사회적 존재, 사회적 의식 운운하는 게 웃기다는 얘기다.
그러니 "이라크 파병"에 대한, "비정규직 양산"에 대한 부당성 뭐 등등등을 분명 알면서도 대충 둘러대는 그에 논리는 부족하고 두서가 없다. 게다가 당당히 파병연장동의안까지 찬성하겠다고?
정치인이란 작자가 겨우 한다는 말이 대통령이 어렵게 한 결정이라 지지한다? 차라리 이라크 파병, 비정규직 양산이 합리적 효용성이 있더라라고 말하는게 더 솔직한 유시민이지 않을까? 호떡얘기 대충 얼버무리지 말고, 지금 주둔한 군대가 살아 있는 것만해도 합리적 효용성이 충분히 있다라고 말하는 것 말이다. 아니면 뜻이 있어서 반대한다면 평당원들 이끌고 분당이라도 하던가 말이다. 대통령 끌구..
나도 유시민은 물론 열린 우리당에 필요한 위치이거니와,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가끔씩 그의 지나친 행보는 부담스럽기 그지 없다. 더더욱 '나는 논리의 힘 밖에 없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말이다.
오늘 내가 졸라 시발 좆같이 싫어 하는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전인권", 남들이 칭하는 것과 다른 내 단어로 '인권이형'이 나왔다. 매번 나이 어린 친구와 몇마디 나누다가 전인권 얘기가 나오면 대립한다. 이은주를 이용한 전인권이 싫덴다.
그럴때마다 전인권은 너희가 그렇게 여길 인물이 아니며, 전인권이란 인물은 우리가 살고 있는 그런 세계의 인물이 아니다라고 얘기해줬다.
그는 나와의 인연은 그전에 라디오, 앨범 이외로 만난거 빼고 리얼판타스틱콘서트 1회때 게스트로의 출현 때문이었다. 깜박깜박하는 형님은 콘서트때 나와준다는 약속을 잊고, 9시에 출현할 인권이형은 8시에 창원에, 공연끝난 후로 거기에 있었다. 겨우 연락을 받으시고, 창원에서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 총알택시를 타고 공연장으로 오셨다. 그게 바로 10시. 웃긴건 공연을 잊어버렸다는 것에 내가 화가 나는 것보단, 어렵사리 창원에서 여기까지 행차해주신게 너무 고마웠다. 돈도 되지 않는 공연인데..,
그래 뭐 말한마디 건네보지도 못했다. 멀리서 그분의 자태를 볼뿐...
근래에 1집 앨범 낸건 손수 샀지만, 2집 앨범이 나온건 몰랐다. 껄님의 포스팅으로 알았고, 리얼판타스틱 영화제에서 마지막에 그 노래를 불렀을때 울컥 눈물이 났다. "걱정 말아요 그대"를 듣는 순간, 그 전까지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가에 대해 밖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들었던 수많은 의문에 대해, 그는 그 노래로 나의 눈물을 흠쳐준 사람이었다.
걍 때려치고 싶었던 그때, 나이 어린 자원활동가만 없었으면 그간의 삶이 서러워서라도 엉엉 울뻔했다.
꺅! 내가 졸라 시발 좆같이 싫어 하는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인권이형과 같이 최성원씨도 나왔다. 최성원씨의 파워를 아는 이가 30대 이하 몇몇 될까? 최성원씨가 티비 나온적이 몇 번 될까? 아 좋다.
역시나 시발 좆같은 '윤도현의 러브레터'는 성원이형 노래는(들국화 노래 빼놓고) 안 틀어준다. 너희가 그러면 그렇지...
암튼 인권이형을 오랜만에 본게 너무 좋았다. 그런 말도 안되는 공세에 잘 계시고 살아계시는 그가 진짜 '들국화'다. 그래서 아직도 나는 그를 변호한다.
덧붙여 : 벅스 유료화후 1분 듣기로 성원이형의 "이별이란 없는거야"를 1분만 듣는다. "이별이란 생각으로 울지마 그건 너의 작은 착각일뿐야 가면 어딜가니 좁은 이 하늘 아래 한동안 둘이 서" 거기까쥐 1분이다. 나의 감성이 돈으로 아쉬어 진다. 씨디를 사던 그래야지
큭...거기에다 정원영 밴드가 나온다. 123카바레에서 노래를 불러줬던 정원영 밴드 두언니가 나와서 노래를 부른다. 이번 좆같은 '윤도현의 러브레터'는 레알판타 특집인가?
계속 적게 되는데...꼭 정원영 밴드 음악을 듣기 바란다.시바 죽인다.
걱정말아요그대 - 전인권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 깊이 묻어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이에게 노래 하세요
후회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그댄 너무 힘든일이 많았죠
새로움을 잃어버렸죠
그대 힘든 얘기들 모두 그대여
그대 탓으로 훌훌 털어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 합시다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 합시다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 합시다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우리 다 함께 노래 합시다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이틀전인가? 저번주 금요일이나깐 사흘 전이네.
여차저차 내가 아는 유명 문예패가 이사를 가는 바람에 새 사무실 개소식에 갔었다. 비가 왔고, 처음 가는 길이라 쉽지 않았다.
겨우 그 문예패 사무실에 도착했고, 비슷하게 같이 온 학교후배들과 이러저러 얘기하던 중..
예전에 내가 잠깐 좋아한적이 있는 아이가 나타났다. 아주 잠깐이었는데, 무려 두차례나 내 기억을 차지 하고 있는 아이다. 옛날 나는 그 친구의 웃는 모습을 참 좋아했는데, 어찌 나랑 먼가 되었을랑 말랑 했을때는 그 친구는 별로 웃지 않았다. 그리곤 일방적인 연락두절...
좀 사귈랑 말랑했을때 안 일인데, 그 아이는 분위기무마용으로 아무에게나 걍 웃어주는 것이란다.
그러다, 우연히 지하철간에서 만남이 있었곤 했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서 그런지, 반갑게 인사했고 연락처를 받었지만 그 후 연락을 안했다. 헤어질때 좋게 헤어진게 아닌 것도 있었고, 뭐 시간도 지났지만, 편히 만나고 싶은 생각도 들어, 번호 찍다 말길 몇번... 그리곤 연락안했다.
그러더니, 그 문예패의 단원으로 있는 친한 후배가 반갑다 인사하면서, 요번에 자기 연애한다 자랑을 하길래, 아 축하한다 얘기를 건내는데, 아까 그 아이를 가르키며 저'이'란다.
띵했다. 배가 무지 고파서 이기도 했지만, 그 후배의 말이 일종의 충격이었는지, 약간의 현기증이 났다. 시바 아니 이 무슨 감정의 동요란 말인가?
이런 시바 지랄 쌈싸먹는 느낌들이 마구 들면서, 한숨만 나왔다.
머릿속에선 "사귈랑 말랑 한 애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이유로, 네가 이렇게 동요한다는 것에 대해 쫀나 쪽팔리다"라는 울림이 몇 백번은 메마리 쳤고, 빨리 끝내고 가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이유를 천천히 생각해보니, 이 녀석도 나에겐 특별한 기억을 주었다.
가물가물하는 내 기억의 한 조각을 보실려우..
밝은 웃음이 좋아 처음봤을때 무리해가며, 집까지 데려다 줬는데 그로 가끔씩 불러내어 만나곤 했다. 그 무렵이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안나나 2000년 즈음인것 같다.
나는 신촌의 한 카페에서 그 녀석에게 사귀자고 했고, 그 녀석은 거절했었다. 나는 괜찮다고 했고, 그 녀석은 한번만 안아달라고 했다. 보통의 연인들처럼 카페에서 난 그 녀석의 작은 몸을 뒤에서 안아 편하게 해주었다. 헤어지자던 그 녀석의 한마디가 잊혀지질 않는데...
"남의 살이 참좋다"
이런 우라질...
그후로 연락이 안되다 1,2년후인가 다시 그 녀석을 만나게 되었는데, 걍 편히 술한잔하려고 했었다. 술이 거나하게 많이 들어갔고, 집이 신촌근처인 그 녀석을 데려다 주려 신촌을 갔는데, 한잔 더 하잔다.
그래서 술집에 들어가 둘이 취할 만큼 취했던 그때, 그녀석이 대뜸 나에겐 충격적인 말을 한다.
"오빠는 여자랑 자봤어? 난 그게 너무 궁금해, 좋아?"
큭..난 그렇게 궁금하면 자위할때 그 느낌이지 않을까 뭐 여자가 아니라 모른다 얘기해줬다. 자신은 그런 것이 어떤지 욕구가 생기는데, 이런 욕구가 생기는 자신이 싫다 해서, 난 그건 자연스런 욕구고, 인간적인 본성이네 뭐 이런 가당치 않은 얘기를 해주었다. 필요하면 자위를 하시던가 이런 얘기도 했던것 같다.
아니 근데 이 녀석이 이젠 대뜸 자잔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게 나는 걸 보니, 그땐 시바 가슴이 졸라 뛰었고, 걍 여관가 말어...졸라 번민에 휩싸였다. 술도 많이 취해거니 해서, 너랑 하고 싶어도 지금은 아니라고 했고, 집에 데려다 줄터이니 가자말하곤 그 녀석을 집으로 데리고 갔다. 사실 자고도 싶었지만, 이 녀석이 나랑 잘꺼라고 지 친구에게 전화질을 하는 바람에도(학생운동을 같이 했던 녀석들이라 부담이 컸다.) 이유가 있었고, 이 녀석이랑 원나잇으로 끝내기 싫은 것도 있었다.
집에 다 왔을까? 이 녀석이 와락 안긴다. 그리곤 자기 입을 내 입에 포개 살며시 혀를 내민다. 몇 분이 흘렀을까? 즐기고 있을 무렵 내 혀를 확 깨무는게 아닌가? 이런 시발...뭐하는 짓꺼리야...
그러더니 내 숨소리가 너무 거칠었데나..
그리곤 몇 일후 연락이 돼서 서로 사귀자 했다. 두,세번 만났나? 그후로 연락을 받지 않더니만, 완전히 연락을 끊어버렸다. 만나보니 별루였었나 보다. 뭐 어쩔수 없지.
그로 홀로 긴긴 밤을 보낼때면, 졸라 아까워 하며 이 녀석을 떠올리곤 했다. -_-a
사람이 간사한게, 욕심을 부려야 하지 말아야 할때에, 꼭 땡기는데..
이 유치한 감정을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다. 그 둘은 사귄지 좀 안되었다는데, 그렇게 가심 한편이 아리면, 그 전에 노력이라도 좀 해보던가 말이다. 그러면서도 둘 앞에선 이쁜 사랑하라고 덕담도 건냈다. 참 속도 좋다.
뒷풀이 자리에서 술을 많이 먹었다. 미친게지. 혼자 아려하고 혼자 정리한다. 도대체 이러길 몇년이냐? 진짜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다.
오다이바 간닷
토요일의 짧은 낮시간 덕에 짧게 여기저기 찍고 오는 것 같은 느낌이고 약간은 늦은 시간같지만, 두명의 친구뇬과 오다이바로 향했다.
먼저 유라쿠쵸역으로 간다음에 모노레일인 "유리카모메"를 타기로 했다. 오다이바로 들어가는 방법은 몇 가지 있으나, 그런데로 모노레일을 타면서도 많은 구경을 할수 있는 "유리카 모메"를 선택한 건 순전히 800엔짜리 1일 자유승차권이 있기때문이다. 섬안에서는 모노레인 유리카 모메정도면 대부분을 구경할 수 있다.
유리카모메에서 본 바깥 야경 흔들렸다. -_-
오다이바에서 본 도쿄시내 일호선에서 보는 서울야경과 다름없지만 <br />모노레일에서의 기분은 좀 틀리다.
먼저 유라쿠쵸역에서 가까운 순서대로 '후지TV 본사 빌딩'으로 갔다.
후지 TV 본사로 올라가는 에스칼레이터 ⓒ친구뇬 작품
그 에스칼레이터에서 올러다 본 후지TV본사 빌딩위의 돔 색깔이 변한다. ⓒ친구뇬 작품
에스칼레이터를 올라가자 마자 있는 후지TV마스코트 와 친구뇬 임경
같은 장소에서 다른 친구뇬 은영과 ME, ME는 푸르딩딩 친구와 이티손가락을 하고 있다.
후지TV본사 빌딩안은 여러가지 볼것이 많은데, 약 3가지로 나뉜듯 하다, 돔(구체) 전망실, 후지티비의 역사, 프로그램 등을 구경할수 있는 '스튜디오 프롬나드', 각종 기념품을 살 수 있는 곳.
전망실은 너무 비싸다 판단되여 패스, 통로를 따라 '스튜디오 프롬나드'(약 30분 소요)를 구경했다.
후지TV의 고객관람용 스튜디오 ⓒ친구뇬 작품
이렇게 카메라로 찍힌다.
윗넘들과 친구인듯 한데..
옛날 일본 마을 풍경인데..진짜같다.
근데 모형이다.
정조대라는데 27시간동안 장착했데나..
원피스
다시 보는 후지TV 마스코트 '푸르딩딩'
이런 시추에이션정도 해주는 센스!!
대충 후지TV를 뒤로 하고, 'MEGA WEB'-3개의 전시관으로 이뤄진 테마 파트- 중 토요타 시티 쇼케이스를 들어갔다. 토요타 시티 쇼케이스는 일종의 쇼룸인데, 토요타 자동차의 모든게 망라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 잠시 차 구경하시라.
자 들어간다.
경차종인데, 이쁘다.
현대 차종만 있는 것이 아니다.
버튼을 누르면 보고싶은 차가 나온다. 자판기같은 시스템
나이브한 곡선을 가지고 있는 일인승 자동차
3D 시뮬레이션 룸에 들어갔는데, 책에는 돈을 받는다고 했는데, 가보니 공짜였다. PS 서드파티 "그란스 투리모"팀이 만든거라는데, 안에 들어가면 진동, 흔들의자로 만들었는데, 한번 타 볼만하다.
타기전 한방
토요타 자동차의 역사들이 한번 훌텨가고..
흔들리고, 이리저리 음직이는 의자때문에 제대로 못찍은 주행장면들
토요타 쇼케이스에서 좀더 들어가면 좀더 의미있는 전시장을 봤는데, 장애인들 승차를 위한 각종 차량의 기구들의 시연이었다. 장애인들을 위한 토요타란 기업의 기업정신이 엿보였다. 직접 앉아서 경험을 할수 있다.
이렇게 밖에서 타고
좌석의 기계가 앞좌석으로 손쉽게 움직여준다.
다양한 방법들의 타는 방법들이 고안되었다.
꼭 자동차 관련된것 뿐만 아니라, 생할디자인등 다양한 전시물이 전시되어있다. 꼭 한 기업의 전시장이라고 한다면 이쁜 언니들이 기념품을 나눠주는 것이 아닌, 기업의 기업정신들을 보여주는 것이 좀더 그 기업을 위해서라도 좋지 않을까 잠시 생각을 했었다.
그 다음에는 아픈다리였지만도 본전을 뽑기 위해 좀더 돌아댕기기로 했는데, 각종 과학관과 그외 건물들이 늦은 시간이므로 그래도 열고 있는 여성을 위한 테마파크인 "Venus Fort"로 가기로 했다. 일종의 백화점이라 볼 수도 있으나, 요기조기 이쁜언니들이 보이므로 해피했다.
사진찍고 보니깐 잘 안나왔는데, 진짜 미인들이었다.
유럽의 오래된 거리인듯 실내 디자인이 되어있다.
천정을 하늘로 도배를 했다.
로마의 진실의 입을 비너스 포트에 포팅한 것. 걍 보면 별루다.
답답한 건물들에서 나와 오다이바 해변공원쪽으로 가서 바람을 쒸었다.
멀리 보이는 레인보우 브릿지
그옆에 보이는 뭔가?
진짜 조그마한 자유의 여신상 대략 적절치 못한 배치다.
진실의 입이던, 자유의 여신상이던 참 남의 것을 가지고 와 그대로 심는 그들의 문화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시간이 11시를 다가가기도 하고, 한잔들 해야겠다는 생각에 묘안이 친구뇬들의 숙소에서 한잔 하기로 했다. 물론 동침을 하려고. 쿨럭...문제는 이녀석들이 본좌를 남자라고 안 본다는 사실이다. 시바...
밤새 셋이서 맥주한잔 하면서 "안녕 프란체스카"를 관람했다.
삽질속의 피의 교훈
오다이바는 하루 일정으로 잡고 아침부터 관람하라!
오다이바가 생각보다 넓고, 유리카 모메를 타고 하루종일 돌아다니는게 이익일뿐만 아니라, 저녁에는 관람시간이 제한되는게 있으니 관람시간등을 고려해서 계획을 짜는게 좋다.
암튼 이동하던 중 유리카 모메에서 봤던 일본의 젊은이들 목도리를 뒤에서 메는게 유행이던데, 뒤에서의 테러에 대략 위험. 나도 요번 겨울에 저거 한번 해볼까?
신사, 신궁이라는 의미는 언제나 그렇듯 한국인에게는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개념이다. 허나 내가 보고 느낀 메이지 신궁은 언론에서 들은 다른 신사와 달리 공기좋은 공원으로 느껴졌다. 암튼 어떤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각으로 느끼기에 좋은 공간이라 느껴진다는 말이다.
이걸 모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중앙건물 처마가 참 일본 스럽다.
일본 옛날 건물의 처마의 라인이 보면 볼수록 매끈하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나라의 옛건물들의 처마들도 나름대로의 멋이 있지만, 그와는 다른 매끈함이 느껴진다.
신궁을 뒤로 하고 가는 두 뇨인네와 본좌 뭔가를 불현듯 신의 계시를 받다.
저지른 만행
칼로 새긴것은 아니지만, 그네들의 땅에 아로 새긴 백만년 가리라!!
그리고 또 저지른 만행 크로스~저사진 찍겠다고 저러고 있었더니...<br />지나가던 한국 관광객 몇몇이 지들도 한댄다. 짜식들 근성은..
메이지 신궁을 나와 다시 역으로 가기위해 신궁 앞 다리로 가니 아까 들어올때는 없던 다양한 영혼들이 있다. 이 다리에선 밴드, 코스프레 등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으니 잘 시간 맞춰 가길 바란다. 자 사진들 감상~(단 코스프레를 한 영혼들의 수준이 극히 낮으므로 사진에 담지 않았다.)
춤추는 영혼
그 옆에 노래하는 영혼들 곧 판을 낸다고 한다.
또 바로 옆의 마술하는 영혼
다시 돌아온 하라주쿠역
하라주쿠 역 바로 건너편 청바지점. 청바지에 새겨진 그림이 인상적이다.
졸라 사람 많은 하라주쿠 거리
말로만 듣던 하라주쿠에 당도했다. 그 거리에 첫 걸음을 대자 마자.. 졸라 많은 사람들에 당황!! 듣던데로 일본판 이대거리라 할만 하다.
하라주쿠에서 마주치는 부류는 대략 세가지 인것 같다.
첫번째 잔뜩 피어싱에 가시머리에다가 쇠줄을 몸에 감고 있는 형
두번째 개성이 독특한 패션과 이쁜이들
세번째 나 같은 몰개성적인 외국인들
물론 흐흐 미니스카토들도 넘실댄다. 거리 양쪽에는 옷집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스타 사진들 파는 곳들이 있었으니..몰래 사진들 찍었다.
옛날 학교앞에서 스타 사진 파는 추억들이 아련하다.
'프란체스카'스런 옷도 판다.
비..이넘 사진찍다가 들켜서 더 이상 못찍었으나..
이런 티를 파는 곳에서 몰래 촬영재개..참 흔해 빠진 한류스타들
1번집 마리온 크레페
2번집 엔젤 하트
옷집과 사진파는 곳을 지나 크레페집들을 밀집해 있는 곳에 당도했다. 마주 본 두 크레페가게가 인상적이었는데 두집이 경쟁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이유는...
2번집의 옆간판 얼마나 한국인이 많이 오면 한국어로 저런 홍보를..앞집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참 다양한 크레페들 저 수많은 크레페들이 다 다르다.
2번집의 크레페 만드는 귀여운 일본처자 참 일본인틱하다.
그 기나긴 거리(다케시다도리)를 나와서 4거리 방향으로 가면 '콘도 마니아'란 곳을 갈 수 있다. '콘도 마니아'? 좁은 숍안에 각종 콤돔을 구비하고 있고, 구경 및 구입을 할 수 있다. 원래 사진을 찍을 수 없으나 본좌의 스파이 카메라는 가능하다. 하하하하...구경들 하시라!!
조기 사거리 맞은편에 파란색집이 바로 '콘도 마니아'.
각종 과일맛
뭐라 할수 없는..맛난
체력측정 도구
48가지 체..헉 교본일까?
피카 콘돔...-_-a
역쉬 볼께 많은 거리다. 사진은 계속된다.
지나가다 본 액션 피겨판매점에 들어갔다.
각종 군인 액션피겨들이 주다. 허나..
재일 맘에 들었던 넘들!! 본좌 신기한 것에 바로 뽐쁘질 들어가나..참는다.<br />저걸 집에 가지고 갔을때 감당 못한다.
참으로 신기한 일본문화는 남의 문화를 자신들것처럼 만들어 고 자체를 신화화한다는 거다. 그중 하나가 바로 "엘비스 프레슬리" 뮤지엄이지 않을까? 누가보면 엘비스 프레슬리가 일본태생일줄 알정도로 잘 꾸며놓았다. 소규모지만, 볼만한 거리다.
엘비스 프레슬리 뮤지엄 바로 앞 엘비스 대인의 동상
대인 바로 밑 현판 이 뮤지엄은 엘비스를 사랑했던 팬들이 만든거라 한다.
표범 무늬라..
그를 기억하는 사진들
엘비스 다운 피겨
포마드 구리무
앗!! 맨슨 대인의 피켜
그룹 키스(아마 맞을거다.-_-)가 직접 싸인한 기타
대충 하라주쿠를 정리를 하고 4,5시쯤 친구들과 오다이바를 가기로 했다. 그녀들도 오다이바는 처음이라 했다.
맑은 날의 도쿄 좋다
오늘은 친구뇬들과 같이 돌아다니기로 했다. 먼저 1시까지 친구들의 집인 시나가와로 가기로 했는데, 아침에 일찍 일어났음으로 그전까지의 일정을 정해야 했다. 먼저 도쿄의 심장부인 "고쿄"를 가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헉 그러나 꾸물주물대다가 10반시정도에 도쿄역에 도착하고말았다. 그리고 도쿄역에서 내려 본 거리는 진짜 너무 깨끗했다. 주말이기도 했지만, 너무 깨끗한 거리에 뭐 휴지 하나 버리지 못하겠다.
도쿄역앞 깨끗한 거리 앗 눈에 띄는 저 빨간것은!!
오 이층 빨간 관광버스
사진과 같이 다시 한번 멘트 날리는데, 도쿄역앞 거리는 그야말로 깨끗함에, 차 별로 없음이다. 차를 통제하지도 않는데 거리가 참 깨끗하다라는 것은 나같은 뚜벅이에게는 너무나도 좋은 환경이다.
도쿄역에서 쫌만 걸으면 고쿄에 도착한다.
고쿄는 성주위로 호수가 감싸안고 있는데, 호수뒤로는 성벽이 있다.
요 호수안에는 잉어들이 있다.
일본의 성과 저런 성벽은 일면 이 나라의 역사가 얼마나 왕권에 기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성 바로 옆의 몇 겹이나 되는 성벽과 호수가 있다는 것의 이유가 뭘까 라는 생각을 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벽위로 흘렀을 피들을 머금어서 일까, 성벽들이 으시으시하게 생겼다.
앗 일본판 여의도 공원
역시나 차가 없다.(실지로는 차가 없을때 찍은것임)
좀더 들어가면 우리나라의 여의도같은 공원이 있는데,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다. 대충 궁앞 뜰이라면 되겠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 고쿄에 들어가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12시다. 아깝게 발길을 돌려야 함에 아깝다. 다음에 보자. 고쿄 히가시교엔!!
고쿄 히가시쿄엔의 지도
친구 집으로..
다시 도쿄역으로 와 친구들의 집인 오이마치에 가기위해 시나가와로 가서 게힌 토큐센을 탔다.
어찌하다 지하철 맨 앞에 탔다.
앞에 운전하는 아저씨의 모습이 다보인다.
일본 전철의 특징은 앞에 조종석에 정장을 입은 운전아저씨가 텅빈공간에서 운전을 한다는 것을 그것도 뻥 뚫린 창으로 볼수 있다는 것이다. 사뭇 우리나라와 다른 분위기가 재미있다. 무사히 오이마치역에 내려 버스를 타야 하는데..
가슴이 두근한다. 왜?
일본버스를 타는 첫 경험이기 때문이다. 친구가 얘기해 주길, 일본 버스는 마을버스가 대부분이고, 서울버스와 달리 내리는 벨을 누르면 내릴때까지 버스문을 닫지 않는다. 우리나라 버스는 어떠한가? 사람 10명이 내리는 데 걸리는 시간이 10초도 안걸리지 않은가?
참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버스에서 내리기 위해 달리는 버스에서 내리는 곳까지 아슬아슬하게 가는 할머니나 아이들을 보자면 내가 보기에도 안스러웠기 때문이다.
앗 첫경험!! 보이는 것과 같이 저상버스이다.
버스를 탔다는 증거
친구들의 집에 도착했다. 친구들은 한국인 일본의 IT인력회사에 다니고 있다. 청년실업이나, 낮은 임금율때문에, 더해서 일본이란 나라의 호기심으로 이들 두 친구는 낮선 땅 일본에 왔다. 회사에서 대여해주는 아파트에 사는데, 여자들만 산다. 물론 금남의 집이려니 생각하면 금물인것 같다는 생각이 든건, 내가 들어가자 마자 놀라지 않는 그 여인네들 때문이다.
두 여인네의 방.. 일본 아니랠까봐 다다미다.
돌아온 내 새끼.. 돌아온 내 가방
본좌가 왔다고 몬가 준비하는 그녀들 그것은 바로!!
그것은 바로 찜닭!! 고맙다 친구들아. 시바 일본에서 찜닭을 먹다니..
고거 만들고 새침을 땐다. 귀여운 것!!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먼저 하라주쿠에 가기로 했다. 그래서 최단 거리로 가자는 친구들의 얘기에 따라갔다. 친구들의 집 바로 옆에는 바다가 흐르고 있었다. 표현이 좀 이상한데...암튼 흐르고 있다. 친구들의 집이 바로 인공섬쪽에 세워진거라, 바로 옆에 바다였다.
흐르는 바다를 건너 육교로 넘어서 내려가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렸다.
넓은 엘리베이터안은 자전거가 들어갈 정도로 길었다.
이 지하철 겨우 한 두개 역만 탔는데, 300엔이 넘었다. -_-
첫 지하철 경험! 울나라 지하철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어찌 도착한 하라주쿠역 하라주쿠역은 입구가 하나!!
일본 젊은 거리 하라주쿠 거리를 가기전에 역 바로 옆 메이신 신궁을 가보기로 했다. 메이지 신궁도 그렇게 늦게까지 하지 않기 때문에 구경을 할려 한다면 일찍 하는게 좋다. 암튼 친구뇬들과 메이지 신궁에 들어갔을 때 거의 끝물이었다.
메이지 신궁으로
이제부턴 사진을 넘 많이 찍어서 사진을 중심으로..
메이지 신궁 앞쪽 문 뒤로 푸르른 숲이 인상적이다.
수목원 같은 분위기에 숲냄새가 좋기만 하다.
등인 것 같은데, 저렇게 까지 데코를 해야 하나?
메이지 신궁 바로 앞 정문
수 많은 사람들이 마신다는 바로 그 손 씻는 그 곳, 실지로 마시는 것도 목격했다
메이지 신궁 바로 앞 문을 지나
일본 전통 결혼식 좀 크게 보려면 클릭을!! ⓒ친구뇬 작품
일본 정통 결혼식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행운이라 생각했다. 인생의 수많은 우연에 언제나 감사한다. 결혼식도 끝물이었지만 말이다. 암튼 끝무렵 행진이었는데, 신랑이 앞에서 그 뒤에 신부가 따라 오는 거 였고, 그리고 바로 뒤에 신랑 신부 친구들이 따라오는 그런 형태였다.
맨 뒤의 몇 일본 아낙들의 검정 드레스, 기모노와 말총머리 총각은 참 인상적이었다
같이 감상했던 일본 청년들!!
메이지 신궁을 돌아다니다, 이름은 모르나 암튼 소원을 적어서 걸어두는 곳을 보게 되었다. 간간히 한글로 적힌게 있는데 사진찍어 보았다.
알고있으면 좋은 피의 교훈
일본에서 컵라면을 고를때면 조심해야 한다. 아주 개피보는 경우가 많은데, 진짜 밍밍하기만 한 라면이 대부분인 것 같으니 조심.. 보통 된장을 가지고 국물을 내는 거여서 한국인들에게는 입맛이 안맞는 갑다. 되도록이면 얼큰해보이는 컵라면을 고르는 게 좋다.
정 뭘 먹을지 모르겠으면 위 컵라면을 드시라..해장효과도 있었다.
암튼 아침에 눈보라를 뚫고 숙소를 나왔다. 어제 숙소를 소개시켜준 여인네들과 같이 돌아댕기기로 했다. 그들은 업무차 긴자를 가야 한데서, 긴자로 향했다. 그 분들은 한국색채교육원에 있으신 분들로 디자인에 관련된 직업을 가지신 분으로 "진희"씨와 "지윤"씨이었다.
긴자는 지하철을 몇번 갈아 타고 가는 것 보단, 야마노텐센을 타고 유라쿠초역에서 내려서 걷는 게 좋다는 판단하에 유라쿠초역에 내렸다. 중앙입구로 나와서 좀 걷다보니 쁘랭땅 백화점에 들어갔다.
명동을 걷다보면 중앙극장 옆에 있던 우리나라에선 망한지 좀 되는 일본의 쁘랭땅 백화점은 그런 우리나라의 기억과 다르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한다. 같이 간 여인네들이 직업차로 신기한 디자인의 상품을 볼수 있고, 재미있는 디자인 얘기를 들을수 있었다.
신발주걱도 이런식으로..
삶은 겨란을 넣고 퍼먹는 기구인듯
긴자에서 볼수있는 관광버스, 멋지다.
쁘랑땅 백화점을 뒤로 문구 백화점인 "이토아"를 갔다. "이토야"에는 진기하고 이쁜 문구들이 많다. 가격도 저렴하고, 아이디어가 톡톡튀는 문구들이 많은데 몇 번이나 되는 지름성 펌푸질들을 참느라 힘들었다. 진희씨와 지윤씨는 많은 물품을 샀는데, 그 수많은 것을 포장하는데도 참 오래 걸렸고, 하나하나 정성을 대해 포장하는 이토야 직원들의 친절함에 오래 기다리느라 다리아픈척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이후로 백화점등을 몇군데 다녀봤는데, 대부분 울나라와 비슷하다. 물론 울나라와 비슷하다는 것보단, 별로 구경꺼리가 못된다는 판단하 몇군데 다녀보곤 가질 않았다. 대략 쇼핑을 하지 않는다면, 백화점등은 돌아볼 필요가 없다 생각한다.
이토야 일층에 전시되어있는 지구본 가까이 가보니...
퍼즐이다. 가격도 천만원대...
두 여인네들을 따라 다니다 보니, 생각보다 딜레이가 많았고 그 두 분도 너무 미안해 하셨다. 두분의 일때문이니 어쩔 수 없다는 판단도 들기도하고, 그 두 분이 본좌를 너무 의식하는 것 같아, 먼저 따로 돌아다니자고 얘기했다. 그분들도 흔쾌히 승락했고, 두 여인네들과 논의후 점심을 먹고 따로 다니기로 했다. 먼저 영덕프로(부천 영화제 프로그래머)가 찜해준 쓰끼지 시장을 가기로 했다.
지나가다 본 극장의 포스터, 나쁜교육과 번지점프를 하다이다. <br />몇 일 전에 이은주의 죽음을 이후로 이 포스터를 보는 느낌은 미묘했다.
헤어지기 전에 먼저 점심을 먹기로 했고 점심꺼리를 찾았는데..
긴자거리는 우리나라로 치면 일종의 명품거리로, 물가가 비싸 점심을 먹을 싼 집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겨우 찾은 회덮밥집, 이토야옆 뒷골목으로 좀만 가면 찾을수 있다.
맛은 있었지만, 고추냉이가 눈물을 자극한다.
고놈의 가격 490엔
쓰끼지 시장은 그래서 지도를 보고 찾아가기로 했다.
본좌의 뛰어난 능력중의 하나가 길찾기 능력이다. 지도를 중심으로 대충 동서남북 잡아서 쓰끼지 시장을 찾아갔다. 그렇게 가던 도중 봤던 영화 간판!!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이었는데 신기한건 그 간판 위로 보이는 저 눈동자!
간판위로 뭐가 보인다.
앗 그분 골룸 대인이시다.
이런 지자스~~
쓰끼지 어시장에 도착했지만, 다들 문을 닫고 있다. 헉!! 책을 잘 찾아보니 쓰끼지 어시장은 아침부터 점심 전까지만 한다. 본좌를 반겨주는 건 갈매기때와 까마귀때였다. 쓰끼지 어시장 옆으로는 물길이 있었는데, 바다와 이어지는 듯했고, 갈매기가 여기까지 따라왔는 갑다. 사진을 몇 컷 찍을려 했으나, 카메라(No Zoom)가 안 받쳐줘 실패...
쓰끼지 장외시장
삽질속의 피의 교훈
하루의 일정은 최소한 대충정하더라도, 각 장소의 운영시간정도는 알고 가자. 그리고 일정도 빡빡하게 짜지 말고, 느슨하게 짜자.
암튼 대충 돌아댕기다 보면 이런 삽질은 당연!!
이런 삽질은 후에 계속된다. =_=a
그래도 주변 시장 주변 상점을 돌아다녔다. 돌아댕기다, 찾은 어묵, 오뎅 본가..
아까 그 여인네들과 5시정도에 소니쇼룸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으므로, 시간이 많이 남는바, 좀 걸으면서 돌아다니기로 했다. 눈이 그쳐 다 녹는 바람에 날씨는 쌀쌀하고 바람만 많이 불었다.
그러다 멀리 빌딩사이로 보이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포스터들...
뭔가 하고 가까이 가보니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벤트 셋트장을 볼수 있었다.
빌딩앞에서 반겨주는 황야의 마녀 양반..
2층과 1층사이에 만든 이벤트 셋트장
그런데로 폼이 난다.
마르클과 힌
소피와 그 뒤로 캘시퍼
하울의 성 피겨
다 보고 나오는 김에 마녀양반과 함께
이벤트 셋트장은 그런데로 알차게 꾸며있으며, 평일인데도 수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었다. 일층 공간을 나무로 공사를 하여 이층으로 만들었는데, 아기자기 하고 재미있었다. 이벤트 셋트장을 뒤로 하고 또 걸었는데, 졸라 우울하기만 하다. 바람 졸라 불고, 지나가는 일본인들도 없고...시바 고독하다.
신바시역쪽 굴다리밑 상가들. 전철이 다니면 시끄럽지 않을까?
그 굴 다리안의 노숙자, 생각보다 편안한 잠자리 인듯 싶다.
일본가기 전에 들었던 노숙자들을 처음으로 봤다. 물론 이후 여행에서도 많이 보는데, 한국과 같이 공원, 전철, 역앞 등에서 자주 목격되었다. 다만 우리나라 노숙자랑은 좀 틀린게 다들 너무나 늙은 노인이라는 점이다. 대부분 버려진 노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노숙자를 보는 마음도 안타깝기만 하다. 자본주의사회에 단물만 다 빠진 안타까운...
암튼 이벤트 셋트장을 뒤로 하고 신바시역쪽으로 걸었다. 그러다 본 신기한 할아버지의 모습!!
신긴한 점이 몬가 보이시는가?
혹시 사진찍는게 걸릴까 걱정하면서 찍은 사진. 아 이다지도 높은 그분의 하이힐...
따로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걸으면서 일본거리를 익히는 것도 괜찮은듯 했다. 그러면서 다시 긴자쪽으로 걸어왔다. 5시약속임에도 너무 일찍 왔으므로 좀 돌아다니기로 했다. 그래서 긴자의 중심거리인 와코쪽으로 향했다.
긴자거리의 중심 와코
조기 시계가 보이는 곳 바로 밑이 긴자에서는 유명한 약속장소란다.
좀 돌아다니다 5시가 되서 "쇼니쇼룸(Sony Show Room)"을 갔다.
소니 로고가 적인 그곳 쇼니 쇼룸
아이보 옛날판
아이보 요즘판, 밥먹고 있는 고놈, 손으로 만져주면 주면 좋아한다.
소니쇼룸이 책에도 관광지로 되어있는데, 층마다 같은 제품들이 중복되어 있고 그 전시량도 적다는 생각에 좀 실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세계적 기업이라는 이미지와 달리 가오가 없는듯 했다.
테마성이 약해 약 7~8층정도되는 곳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게 그리 재미있게만은 안 느껴졌다.
그녀들 계속 '일'관련 사진촬영에 여념이 없다 .
암튼 층마다 구경을 하고 나와 오늘 하루 같이 다녔던 두여인네와 저녁과 술한잔을 하기로 했다. 그녀들과 함께 간 곳은 신주큐의 "신주쿠구루메오"란 음식점집이었다.
이 술집은 "I Love Tokyo"책에 나와있는 곳인데, 안타깝게도 책의 지도와는 달리 다른곳에 있다.
그러니 당연히 찾아가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할 수 도 있다. 본좌란 인간 GPS란 말을 듣기도 하지만, 또 하나의 능력을 말하자면, 얼굴에 철판깔기다. 영어를 제대로 할줄 아는 가 하면 절대로 아닌데다가, 더 하나 일본에선 영어가 제대로 안통하지만...
본좌 걍 들이댄다. "익스큐즈미..웨어 이스 히어?"
그래서 본좌의 위대한 능력으로 그 곳을 찾아냈다. 캬오~~
"신주쿠구루메오"의 특징은 일종의 고기 부페로, 샤브샤브는 물론 우리나라에서와 같이 삼결살을 먹을 수있다. 이런 고기를 구워먹을 수 있는 곳이 일본에서는 희귀하다 생각이 들었다. 가격이 두당 2천엔 상당, 좀 비싼편인데, 그런 가격대와 상관없이 술집안에는 생각보다 나이 어린 친구들이 많았고, 여기 저기 술에 달아 오른 친구들이 보인다.
샤브샤브와 삼겹살구이를 같이 해먹을 수 있는 불판과 맥주 500
양파도 구워먹을수 있다. 단 책에 나와 있는 것과 달리 쌈장이 없다. OTL
두 여인네들과 본좌 물론 당연히 한상 가득히 음식을 즐겼다. 일본에서의 어찌 이런 식사가 가능하기나 하겠나? 즐기면서 두 여인네들의 삶에 대한 얘기도 듣고, 일얘기도 듣고, 서로간의 재미있는 일본에서의 두번째 날을 마감했다.
어제 잠도 제대로 못잤다. 시바 첫 해외여행이라 가슴이 벌렁 벌렁 설레이기만 하다. 쪽팔려~
하늘이시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캐리어 가방에는 친구넘들에게 줄 음식이 가득!! 배낭엔 각종 옷가지와 그 외 것들이..<br />그중 저 갈색가방은 나중에 고난의 길을 걷게 된다.
꼬래 해외여행은 무슨 해외여행이냐 자책의 생각이 차츰 차츰 들기 시작한 때는 비행기시간을 2시간후로 잘못 알기부터였다. 아 이런 시바랄~
어떻게 숫자를 잘못 볼 수 있는가 말이다. 정신이 나가도 한참 나갔지. 어머니에게 긴급호출을 했지만, "#$^!@#@$"...
그래 비행기 시간을 놓치지 않을 유일한 방책 하나...
택시 잡아타기!!
현재 시간 12시 25분, 비행기 시간 2시 10분.
딱 40분 걸렸다. 아 한국인의 저력이자, 대한민국의 기상은 단연코 택시이지 않을까? 어찌 용산에서 인천공항까지 40분이 걸린단 말인가? 기사아저씨는 급하다는 말에 시속150을 연달아 밟아 댔고, 정확히 1시 10분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해 보딩패스를 받기위해 출국수속을 했고, 간단한 일본어 회화책과 햄버거를 입속에 쳐넣고, 출국심사장으로 향했다.
요즘에는 신발폭탄이 주요관심대상인지 신발까지 검사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물론 무사히 통과 급히 비행기를 탈수 있는 곳까지 달려갔으나...비행기 연착으로...느긋하게 기다리게 되었다.
인천공항의 탑승구에서 오랜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곧 비행기에 탑승을 했다.
본좌가 탈 비행기..크지 않다.
첫 경험
착륙하는 비행기안에서의 그 기분은 아릇했다. 이상한 넘이라고 볼지 모르겠으나, 본좌 롤러코스터, 바이킹 넘 좋아한다. 게다가 가끔식 와주는 이상기류 아~~ 몰아쳐라..
조금있다 나오는 기내식 자 보라...ANA항공의 기내식..
왼쪽부터 샌드위치, 연어 스테이크, 과일, 김, 초코칩, 음료
연어 스테이크는 대략 난감하다. 손바닥만하게 큰것을 어떻게 먹으라는 건지.. 아침부터 먹은게 없으므로, 암튼 위에 넣고..
또 지나가는 스튜어디스 언니들에게 가볍게 "one bear please~" 오 아사히 맥주 맛있다. 또 달라는 말은 못하겠다. 흑..
출입국신고서를 작성하는데 옆좌석에 있는 남자분의 갑작스런 help!!
25세 가량의 건장한 청년, 그도 첫 여행이라 잘 모르는 것이 많았던 모냥, 그에게 가이드북을 건내주었다. 그 이름 모를 청년은 워킹 비자로 일본에 취업차 가는 이였다. 일본어를 전공했으나, 자신도 일본은 처음이라 했다.
이러저러 대충 2시간 걸려 도착한 일본 나리타 제2공항은 한마디로 썰렁했다. 금방이라도 벽의 타일이 떨어질 것 같은 어두침침한 공항은 딱 공포영화에 나올만했다.
출입국신고를 하는데, 기내에서 벌써 쓴 출입국신고서를 다시 쓰라는 식이었다. 그걸 주도한 이가 출입국신고서를 이상하게도 다시 들고 있는 공항아저씨었는데, 그 아저씨를 보고 한사람이 쓰고, 또 많은 사람들이 출입국 신고서를 다시 썼으나 본좌 그냥 가볍게 쌩까주고 신고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다시 쓰라는 게 아니라, 뒷면에 추가사항을 써주셨으면 좋겠다는 거였고, 아직 안 쓴사람은 자기에게 받아 쓰라는 거였다.
암튼 출입국신고서를 시작으로 이빨을 같이 까던 바로 그 옆에 있던 친구와 입국수속을 하고 나왔는데...
그의 계속되는 고난연속 일본여행
앗 이런 나의 캐리어 가방이 없어진거다. 이런 황당할 수가 있는가 말이다. 한국땅에서 아닌 타국땅에서 영어, 일어 못하는 나에게 일어난 일어난 이 극악무도한 사건에 본좌는 정신을 차릴수 없었다.
삽질속의 피의 교훈
가방을 잃어버렸을 때는 당황하지 말고, 근처에 있는 공항"여"직원에게 상세히 말하도록 하자. 영어도 잘하고 이쁘기까지 하니...단 작업을 위해 가방을 숨기다 발각되는 일이 없도록
본좌의 경우, 기본적인 에스코트까지 해주며, 친절하게 물어봐주던 여직원은 키는 작긴했으나 "진혜림"과 많이 닮았다. 어헝...
가방을 잃어버린 다음 비행기를 타기전에 여행보험을 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보험은 출국전 공항 메인홀에서 쉽게 가입할수있고, 그렇게 비용이 들지 않는다. 싼 보험은 1~3만원대 한다.
같이 나온 친구의 일본어 실력과 이래저래 본좌의 손짓발짓 되도안되는 영어실력으로 가방분실을 공항측에 신고하고 홀로 나왔다.
가방을 잃어버렸다는 허탈함이 들어야 하는데, 웃기게도 새로운 경험을 했다는 전율이 내몸을 타기 시작했다.
ANA항공을 이용하면 나리타 제2공항으로 나오는데, 동경에 가기위해 게이세이선(京成線)을 타기위해선 지하 일층으로 가야 한다. 규오오오오....아까 그 위킹비자 친구와 일층으로 가던중 들리는 한국어!!
"저어 죄송하지만, 한국인이시죠?"
두명의 여인네가 갑작스레 옷자락을 잡는 것이었다. 두 세시간동안 헤매고 있는데, 업무차 갑작스레 일본에 와서 묵을 때가 없다는 것이다. 어찌어찌 얘기를 하고 그래서 될수 있다면, 본좌가 묵고 있는 "동경하이츠( http://tokyohomestay.com )"빌을 권유했고, 같이 가기로 했다.
아 이런 가방까지 잃어버고 할수 있는 것이라곤 한국어뿐인 놈이 두여인네까지 달고 동경을 간다는 것이 가능이나 할까?
도착?!도착?!
게이세이선에서의 지하철안, 조용하기만 하다.
게이세이선(1000엔)을 타고 약 1시간반을 타고 닛뽀리 역까지 가서 야마노텐센을 갈아탔다. 야마노텐센을 갈아탈때는 표를 다시 끊어야 한다. 정산기를 이용하거나, 혹은 표를 다시 사서 야마노텐센을 갈아타고 숙소"동경하이츠"가 있는 "스가모"로 향했다.
오...야마노텐센에는 한국어등으로 표기되어있는게 고맙기만 하다.
스가모역은 출입구는 하나고 나가보니 본좌의 아리따운 친구뇬둘이 기둘리고 있다. "동경하이츠"의 아저씨와 연락후 아저씨를 따라 숙소에 간후 대충 짐을 두고 친구뇬들과 오랜만에 한잔하러 그들을 따라 나섰다. 목적지는 시부야!
보통 사진에 많이 보이는 그 거리를 뒤로 하고 간간히 내리는 빗줄기가 좀더 커졌고, 그 유명하다던 회전초밥집 "쓰끼지 혼테"을 가려했으나, 인산인해로 포기하고 그 주변 술집에 들어섰다.
술집 안에는 양복을 입은 남녀들이 술자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회사원들인 듯 싶다. 같이 간 친구뇬들과 시킨안주를 감상하시라.
일종의 기본안주 두부튀김을 조림을 한거다.
감자와 치즈로 결합되어있는 안주. 먹을만한 안주.
김치전(기무치지지미) 일본에서 절대 피해야 할 안주!
이이들이 본좌의 친구들이다. 첫회사의 친구들로 일본에서 갖은 착취를 당하고 있다. <br />두 뇬다 상당한 미모를 가지고 있다. 본좌 이정도다.
여기서 김치전은 최악이었는데, 행여나도 이 안주를 주문하는 천인공로할 행위를 하지 마시라. 100% 후회한다. 일본에서도 김치가 유행인데, 한국의 안주를 대충 배껴서 이런식으로 안주를 내는 갑다.
보통 일본의 안주는 200~400엔사이로 조금씩 조금씩 나온다. 일본에서는 밥도 안주도 이런식으로 조금 나온다.
대충 일차로 회포를 푼 후, 2차 술집을 향했다. 두번째 술집은 좀더 술집스러운덴데, 술집에는 젊은 애들만이 가득하다.
술집스럽게 하는 뒷배경, 직접 그런 것인갑다
말고기, 첫경험이다. 어헝..200엔정도다
술집의 이름이다. 일본어 모르므로 패스
이렇게 12시까지 친구들과 술을 한 후 숙소로 들어와 쉬었다. 아 오늘도 참 고난의 하루였으나, 내일은...
잠깐!! 친구들과 주점에서 술을 마실때 전화 한통이 왔다. 아까 읽어버린 가방을 찾았다는 전화다! 아 십년 감수에 가방안에 들어있는 물건의 품목들과 액수들과 옷가지가 머리속에서 뱅뱅돌며 '시발 좆됐다'라는 생각 일색이었는데, 일순간에 가셨다. 가방은 친구네 집으로 부친데서 가방과는 좀더 떨어져 있어야 한다.
좋다!! 이런저런 경험이 즐겁기만 하다. 좀더 몰아쳐다오!!
간만에 제 블로그에 찾으신 분들은 놀라셨을 것 같은데..
잠시 몇개 포스트를 비공개로 한 것과 그 간에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PiFan 신임집행위원장 정홍택씨에게 부당해고를 당한게 1월 17일이었습니다. 이유는 올해 영화제의 새로운 틀을 가지고 가기위해선 낡은 틀을 벗자라는 -남들이 얘기하는- 곧은 얘기했다는 이유였습니다.
짤린다음 부천으로 출근은 할 수 없겠다 생각이 들어 이월 자료들을 집에 가지고와 정리하고, (이 다음으로 재계약을 안하겠다는 것으로 당시 1월말에 나머지 3명의 스텝도 짤리게 됩니다.) 김영덕 프로그램머의 짐을 나르는 걸 도와주길위해 또 이월자료를 주기위해 2월말에부천을 들렸습니다.
정초신감독이 PiFan프로그래머로 온다하며, 그 날 올 것이다라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뭐 어떤 불편한 감정보다는 '뭐 그럴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막상 만났을때도 편히 인사하고 농담을 할정도로 였었죠. 간간히 자신이 구원투수다라는 표현을 무리하게 할때마다 감정이 상하긴 했었습니만, 그렇게 불편한 사이로 지내는 것도 좋지 않겠다 했습니다.
그러나 집에 돌아와서 그가 그의 블로그에 쓴 표현들과 내용들은 충분히 저를 분노하게 했었습니다. 자신사퇴를 한 스텝들도 나갈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고, 짤린 4명의 스텝도 말도 안되는 이유에 짤릴때 그만큼의 아픔과 고민이 있었는데...
그런 아픔을 가지고 PiFan을 떠난 무책임한 사람들로 표현했고, 소방수, 구원투수라는 표현을 들어 그가 PiFan영화제를 하는것에 대한 정당성을 얘기하는 것도 진짜 너무한다 생각했었습니다.
몇몇 지인들이 그런 정초신씨의 블로그 포스트에 너무 열받아 흥분할때 그러지 말자라고 얘기한것도 저였고, 그냥 놔두자고 했었습니다.
근데 PiFan소식이 궁금해 오늘 우연히 들렸던 그의 블로그에 "혁명전야"라며 포스트가 올라왔는데 "쓰레기만 남기고 쓸만한 모든 것을 챙겨간 당신들, 그들에게 동조하는 인간들. 무엇하는 사람들입니까."란 표현과 함께 선지자같은 어조로 올린 글을보자 참아왔던 분통이 터졌습니다. 나간 전스텝들을 묶어서 비난하는 글이었고, 그런 글에 조금은 과격한 비판과 비난성의 "아니 이런...정초신씨 정도는 지킵시다."란 글을 제가 걸었고, 그는 좀더 과격하게 "선전포고"라는 글을 저에게 썼더군요.
폭발에 폭발할 지경이었습니다. 저와 새로운 판타스틱 영화제를 준비하는 이들을 PiFan파괴자, 영화제 접수, 방해, 비겁이란 표현을 사용해 맹비난했고, 저도 흥분하지 않을수 없었고 조금은 비겁하게 그를 비난했음을을 솔직히 시인합니다.
그래도 이성적으로 비판을 하자, 그래서 기초부터 하자는 생각에 그가 잘못알고 있는 기본적인 팩트에 대해 설명을 했고, 전 프로그래머들에게 사실관계를 알아본 결과 대부분 정초신씨가 잘못 알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정중하게 공식적인 사과를 바랬습니다. 그가 공식적인 사과를 한다면 저도 공식적인 사과를 할 생각이었고, 그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관대로운 사람이하고 생각했었습니다.
허나 글을 지리해졌고, 정초신씨는 사과는 커녕 빈정으로 화답을 했고, 저도 과격한 어구로 그를 비난했었습니다. 그러구 30분도 되지않아 정초신 블로그에 영화제 관련 모든 글들이 자취를 감쳤습니다.
유명 감독으로써 한 영화제의 수석프로그래머에게 그런 사과를 바란다는 것이 쉽지 않을꺼라 생각했지만, 저는 그가 사과를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물론 지나쳤음도 시인하는 바입니다. 제가 사과할수 있는 시기가 온다면 충분히 누가 먼저랄께 아니라 제가 먼저 할 생각입니다.(그의 블로그에 방명록에 글을 남길 생각입니다.)
오늘 일을 이 포스트에 이렇게 적은 이유는 충분히 정초신씨를 좋아하고 아끼는 분들에게도 죄송하다는 이유도 있고, 몇몇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도 알려야 하겠다는, 또한 이 문제가 단순 전/현 스텝간의 갈등이다, 그들의 분열이다라고만 아시지 않았으면 하겠다는 이유여서 였습니다. 물론 이글은 저의 관점에서 서술된 것이겠습니다.
암튼 오늘 하루 너무나 머리가 아픈하루 였습니다. 백수의 하루가 길것 같은데 참 짧군요.
ps1. 그리고 조언과 아는 사람이라고 봐주는 게 없는 냉혹한 비판을 해주신 노바리님께 감사드립니다.
ps2. 정초신감독의 리플도 바라는 바입니다.
같이 회의들 안하셨나 보네요. 실은 훌륭한 분이었군요. 근데 사무국 쪽은 사람들이 있어서 못지웠답니다. 프로그램, 홍보쪽은 왕창 지워졌어요. 사무국 쪽은 지워도 영화제 할 수 있지만, 프로그램 쪽은 그렇지 않겠지요. 기억 못해서 미안합니다만, 프로그램팀 막내인줄 알았지요. 게다가 엮기까지 하고 있으니.. 애정 없으면 그냥 잊으세요. 어차피 앞으로 부천 쪽으로 오지도 않을거 아닙니까.. ^^*
아참.. 하나만 더.. 그날 김영덕 프로와 나눈 이야기는 어떻게 해서든 진정 국면으로 넘겨보려고 했던 말입니다. 오해를 일방적으로 하시니 뭐라 할 말은 없습니다만.. 전임 프로그래머들에게는 법원에서 고소장이 들어갈 예정입니다. 영화제에서 출장비 받아 일하고 자료가 없으니 당연한 절차입니다. 포르토에 가서 받으면 된다고 무마시키려는 행동이 그렇게 비춰졌다면 미안합니다. 프로그래머들 재판 받게 그냥 놔두렵니다..
2, 3, 4, 5회.. 4년을 피판과 함께 보냈었습니다. 그때도 지금과 결코 다르지 않았습니다. 매년 사람들이 나가고 들어오고, 한때는 지금처럼 다 나가버린 적도 있었습니다. 이번에 나갔던 스탭들은 이전의 모든 스탭을 갈아치웠습니다. 그때 부당하게 쫒겨나간 사람들은 나쁜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해합니다. 저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으니까요.. 단지, 기록을 지우고 가지 않았을 뿐입니다. 새로 시작하려는 입장에서 기록이 없어서 새로 시작해야만 하는 왕짜증이 폭발했습니다.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엽민 / 내 글이 그리도 냉혹했더냐... 흘흘.
어쨌건 힘내시도록. 상처는 최소한으로, 해결책은 최대한 빨리. 싸움이 아직 끝난 것도 아니고. 그리고 대안영화제에 대해선, 나도 좀 그렇다. 게다가 나 역시 다른 루트로 이래저래 듣는 이야기들도 좀 있고... 하여간 지혜롭게 잘 싸우기 바란다.
지중해 / 해당 전임 담당자에게 먼저 자료파기에 대한 확인과 자료 재요청 절차를 먼저 거치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리고 저간의 자세한 사정이야 잘 모르지만, 제가 일했던 2년을 보자면(그 2년 중간에 몇달 쉬었고요), 한 해 영화제가 끝나면 자료를 전부 이동디스크에 옮겨놓고 하드 포맷하고 하는 일이 그리 드문 일은 아니라고 알고 있거든요. 저도 2년 모두 계약기간 끝날 때 맨 마지막으로 했던 업무가 그간 자료를 백업해서 CD로 옮기는 일이었구요. (보통 임대컴퓨터를 쓰기 때문에 영화제 끝나면 반환을 하죠.) 이전 스탭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 자료가 파기됐을 가능성도 크고, 고의가 아닌 실수였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쨌건 어려운 자리이니만큼 힘내시고, 좋은 영화제 만들어나가시기를 소망합니다. 전/현 스탭의 대립구도가 아닌만큼, 전 스탭들과 의사소통 통로를 확보해두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주제넘는) 조언을 드리고도 싶구요.